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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레볼루션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상상속 에너지 웹툰공간

휴대용 발전소의 시대

  • 작성일 2018.09.11
  • 조회수 14769



by 최원석(과학 컬럼리스트)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도 30대를 전후한 세대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 작품은 겉으로 보기에는 거대 로봇을 타고 전투를 벌이는 흔한 일본 메카닉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종교와 철학적 내용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감정과 심리까지 섬세하게 묘사된 수작이다. 


에반게리온은 주인공이 타는 거대 로봇으로, 등에 전력 공급 장치를 연결하고 있어 장치가 분리 되면 짧은 시간 밖에 전투를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메카닉물에서 에너지원에 대해 대충 얼버무리고 마는 것과 달리 과학적 고민을 한 것이 돋보인다. 이 거대한 로봇의 작동시간을 늘이려면 배터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배터리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아예 발전소를 가지고 다니면 어떨까 ?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




연료전지라는 말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일 것이다. 수소가 산소와 반응하면 물 밖에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친환경적 자동차의 상징이 된 것이 바로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다. 내연기관 자동차들이 머플러를 통해 온실가스를 비롯한 다양한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것과 달리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는 물밖에 나오지 않는다. 물론 환경적인 측면만 고려한다면 이미 상용화된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전기 자동차를 이용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를 보급 확대하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연비가 높다고는 하지만 결국 화석연료를 사용해야 하며, 전기 자동차는 긴 충전시간과 장거리 운행이 어렵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는 말 그대로 연료가 되는 수소를 공급하면 연료전지에서 전력을 생산해 자동차의 모터를 계속 움직일 수 있어 편리하다. 



연료전지는 배터리보다 많은 양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자가용뿐 아니라 대중교통에도 활용할 수 있다. 전철의 경우 전력을 공급할 팬터그래프를 필요로 하지만 연료전지 전철은 연료를 싣고 다니기 때문에 전력공급선이 필요 없다. 전력 공급 시설이 필요 없어 그만큼 건설과 유지보수 경비를 줄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연료전지가 첨단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이미 원리는 200여 년 전에 알려져 있었을 정도로 단순하다는 것이다. 


1839년 그로브(William Grove)가 최초의 연료전지를 개발했을 정도로 오래된 기술인 수소 연료전지의 원리는 ‘물의 전기 분해 역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물에 전기를 흐르게 하면 물이 분해되어 수소와 산소가 발생하는 것과 반대로 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가 반응해 물이 생성될 때 전기가 발생하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연료전지는 (-)극에 수소를 공급하고, (+)극에 산소를 공급한 후 전해질(이온이 이동할 수 있는 물질) 막을 통해 수소이온이 이동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극에서 수소 분자가 촉매로 되어 있는 전극 표면에서 전자를 잃고 수소 이온이 된 후 수소이온은 전해질(이온을 이동시켜 전류가 흐르게 하는 물질)을 통해 (+)극 쪽으로 이동한다. (+)극으로 이동한 수소이온은 산소와 만나 물 분자가 된다. 이 반응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연료가 되는 수소를 계속 공급해야 하므로 연료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군사, 우주, 탐사용 발전소 





‘전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연료전지도 배터리와 마찬가지로 전기화적적인 방법으로 전력을 생산한다. 단지 배터리는 내부에 저장된 화학에너지를 모두 사용하고 나면 더 이상 전력을 생산할 수 없지만 연료전지는 연료를 공급하면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또한 배터리는 사용하지 않아도 방전이 조금씩 일어나 에너지가 낭비되지만 연료전지는 연료를 공급하지 않으면 전혀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전기를 생산한다는 측면에서는 배터리와 비슷하지만 연료를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연료전지는 열기관과 닮았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과 같은 영화를 보면 디젤 잠수함이 적에게 노출될 위험을 무릎 쓰고 수면에 떠 올라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디젤 잠수함도 전기로 작동하지만 필요한 전력을 디젤 발전기로 얻기 때문에 기체 교환을 위해 한 번씩 수면으로 올라와야 한다.



디젤엔진과 같은 열기관으로 발전할 경우 효율성이 떨어지고 잠수함처럼 밀폐된 공간에서는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연료전지는 엔진과 같은 구동 부품이 없어 소음이 적고 신뢰성과 효율성이 높아 1980년대 초 영국 해군은 잠수함에 연료전지를 도입한다. 또한 1960년대 미국의 NASA에서는 우주선에서 연료전지를 사용하기 위한 연구를 했다. 



연료전지는 배터리보다 크기나 무게가 작아 군사 작전용이나 오지 탐사연구용으로 적합하다. 추가 배터리를 가지고 다니는 것보다는 연료팩만 있으면 얼마든지 전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메탄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소형 직접메탄올연료전지(DMFC,Direct Methanol Fuel Cell,)의 경우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곳에서도 메탄올만 있으면 노트북이나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미 오래전에 발명되었지만 값싼 화석연료를 내세운 내연기관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연료전지가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전해질에 사용되는 재료나 촉매인 백금의 가격이 비싸고, 수소를 저렴하게 보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착한 녀석들 




연료전지라고 하여 전기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수소와 산소가 반응하면 전기와 함께 열도 발생한다. 즉 연료전지는 전기와 열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시스템으로 연료전지 열병합발전을 통해 두 가지 에너지를 모두 활용할 수 있다. 수소와 산소가 반응할 때 발생하는 열은 연료전지의 효율을 떨어트리게 되지만 이때 생긴 열을 건물의 난방에 활용하면 그 만큼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연료전지는 도심의 건물뿐 아니라 농가나 매립장, 맥주공장과 같이 유기성 폐기물이 생성되는 곳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폐기물을 메탄 발효시켜 얻은 바이오 가스를 연료전지의 연료로 사용하여 전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축산분뇨나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오는 악취를 줄이고 환경을 보전하는 동시에 생산된 바이오 가스의 활용도를 높여주는 것이 바로 연료전지다. 

  

연료전지 중 가장 독특한 것은 미생물을 활용한 미생물연료전지(MFC, microbial fuel cell)일 것이다. 마치 전기뱀장어가 전기를 만들어내듯 MFC는 미생물을 이용해 유기물에서 전력을 생산한다. MFC는 생물의 몸에서 에너지를 얻을 때 생기는 생체내의 산화환원 반응(전자를 잃거나 얻는 화학반응)을 이용한다. 



화학반응이 일어날 때 전자를 주고받는 것처럼 생물의 몸속에서도 전자의 이동이 일어난다. 이때 일부 미생물은 자신의 몸에서 생긴 전자를 몸밖에 있는 금속산화물을 환원(전자를 얻은 물질은 환원된다)시키는데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전자를 몸 밖으로 배출하는 미생물이 만든 전자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바로 MFC이다.


MFC는 미생물에 따라 셀룰로오스와 같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질이나 해저퇴적물을 분해해서 전기를 얻을 수도 있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하수슬러지나 가축분뇨와 같이 유기성 오염물 속에서도 전기를 만들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오염물질을 제거하면서 전기까지 생산해 낸다니 이 보다 더 착한 녀석들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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