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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어 좋은 날

  • 작성일 201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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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석(과학 컬럼리스트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거대 기계문명에 맞서는 바람계곡의 공주 나우시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황폐화 된 지구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는 에코 판타지물이다. 


거대한 비행기로 바람계곡을 침략한 왕국의 비행기는 마치 풍차를 몰아낸 증기기관처럼 느껴진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영화에서 현대 문명이 야기한 여러 가지 문제는 결국 바람을 활용하는 바람계곡의 사람들처럼 자연을 활용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바람의 제국



대항해 시대는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처럼 모험과 낭만으로 가득한 세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항해 내내 질병과 부상, 기아에 허덕여야 했고, 암초나 태풍을 만나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물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적도무풍대에 갇히는 것이었다. 범선을 탄 선원들은 바람이 없는 것 보다는 차라리 태풍과 싸우는 것이 좋았다. 무풍대에서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서서히 죽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도무풍대: 북동무역풍대와 남동무역풍대 사이에 낀 적도 부근의 지대로, 상승기류가 활발해 바람이 약하지만 많은 구름으로 인해 호우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이처럼 유럽의 범선들이 앞 다퉈 세계의 바다를 누비던 시절 바람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유럽과 신대륙을 잇는 항로에 부는 바람이라 하여 무역풍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만 봐도 바람의 힘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바람은 범선을 타던 선원뿐만 아니라 농부에게도 소중한 존재였다. 풍차는 중세의 목가적 소품이 아니라 농업생산력을 높이는데 필수적인 장치였다. 그래서 풍차는 산업혁명초기까지도 계속 그 수가 계속 증가했다. 


풍력은 유럽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1세기 초까지만 해도 아시아나 중동에 비해 보잘 것 없었던 유럽은 15세기로 접어들면서 화약(화학에너지)와 바람(역학적 에너지)을 활용한 덕분에 신세계로 뻗어나간 바람의 제국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제국이 점차 거대해지자 풍차와 범선은 증기기관에 밀려나는 처량한 신세가 된다. 


유럽의 제국들이 탐욕에 빠져 바람의 힘을 잊고 사는 동안 신대륙에서는 발명가들은 바람을 이용한 신기술을 찾아냈다. 바로 비행기였다. 프로펠러에서 날개로 바람을 보내면 날개에서 발생하는 양력으로 하늘을 나는 장치가 비행기이다. 


가벼운 글라이더는 자연 바람만으로도 하늘을 날 수 있었지만 무거운 비행기는 인공으로 바람을 만들어야 날 수 있었다. 비행기는 자연의 바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 바람 속을 나는 기계 장치인 셈이다. 



바람의 지배자



비행기와 풍력발전기는 바람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닮은꼴 기술이다. 풍력발전기는 풍차와 같은 원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지상에 고정된 비행기로 부르는 것이 옳을 만큼 비행기와 비슷하다. 

풍력발전기의 회전날개는 프로펠러의 회전날개와 마찬가지로 블레이드(Blade)라고 부른다. 또한 비행기가 실속(stall)하면 추락하듯 풍력발전기는 실속(stall) 현상이 생기면 발전을 할 수 없는 등 유사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실속(stall): 비행 중 급격히 상승 각도를 높일 때 기체를 들어 올리는 날개 양력을 잃어버리는 현상) 


(*양력: 풍력발전기의 날개를 돌게 하는 것은 위쪽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양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풍력발전은 풍차를 연상시키는 낭만적인 느낌을 주지만 사실은 항공역학에서 재료, 전기전자, 토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계기술이 필요한 첨단산업이다. 풍력발전이 첨단기술이 된 것에는 풍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함이다. 풍차는 증기기관과 달리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이 될 수 없었기에 산업혁명에서 밀려났다. 


아무렇게나 부는 바람을 가지고 어떻게 공장을 돌릴 수 있겠는가 ? 하지만 바람이 규칙 없이 멋대로 부는 것은 아니다. 적벽대전에서 유비는 때마침 불어온 바람을 이용해 조조의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는 제갈공명이 신통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바람 부는 때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제갈공명이 알지 못했던 바람이 부는 원리를 상세하게 알고 있다. 즉 태양복사에너지의 부등가열에 의해 공기가 상승하는 곳은 저기압, 공기가 하강하는 곳은 고기압이 형성되어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바람이 분다는 것을 안다. 

또한 기상관측을 통해 지역별 통계적인 값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바람이 계절풍, 해륙풍처럼 일정한 패턴을 지닌다는 것도 안다. 물론 풍력 데이터를 가지고 적합한 장소에 풍력발전소 건설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바람의 풍향과 풍속이 수시로 변해 전력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풍력발전기를 단지화한 윈드 팜(Wind farm)을 건설하면 다소 바람이 불안정해도 서로 상쇄되어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국토가 좁아 윈드 팜 보다는 다른 발전방식과 융합하거나 저장장치를 사용해 에너지를 저장해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늘로 날아간 발전소



다른 신재생에너지와 마찬가지로 풍력발전도 바람이 가진 운동에너지를 최대한 기계적 에너지로 많이 변환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바람이 가진 운동에너지를 100% 기계적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는 없다. 


바람이 가진 에너지를 모두 변환시키려면 공기의 흐름이 정지되어야 하데 이때는 바람이 불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이상적인 풍력발전기라 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최대 에너지 비율이 59.3%를 초과할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풍력발전기는 변환 때 손실이 발생하여 실제로는 바람이 가진 에너지의 10~30% 정도만 전기에너지로 얻을 수 있다. 

풍력발전기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크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블레이드 길이가 10% 증가할 때 출력 효율은 21% 증가하기 때문이다. 물론 풍력발전기를 크게 만들면 그만큼 제작비가 많이 들지만 출력은 그 보다 더 빨리 증가해 결국 비용을 상쇄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로터 블레이드의 지름이 120m를 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 거대한 블레이드가 회전하면서 휩쓸고 지나가는 면적은 축구장 2개와 맞먹을 정도로 넓다. 풍력발전기기가 계속 커지고 있지만 수 백 미터 이상 큰 것을 건설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발전소를 공중으로 띄우는 것이다. 지상에서 고도가 높아지면 지면과 마찰이 줄어들어 바람의 세기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일정하게 분다.



공중부양 풍력(AWE: Airborne Wind Energy)은 헬륨가스를 이용해 발전소를 공중에 띄워 발전하는 방법이다. 또한 연을 날려서 발전하는 방법도 있다.  

저고도에서 기구나 연을 이용하는 것이 매력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대류권계면 위에 있는 제트기류를 이용하는 고고도 발전까지 가능하게 될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은 미국에 폭탄을 투하하기 위해 제트기류를 사용하기도 했다. 시한폭탄과 폭약을 줄로 매단 열기구 9,300여개를 제트기류를 사용해 미국으로 날려버린 것. 실제로 미국에 1,000여개가 도달했으나 미국 공군에 의해 하늘에서 폭파됐고, 피해는 거의 없없다고 한다. 


제트기류를 전쟁에 이용하려던 일본의 계획은 실패했지만 언젠가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제트기류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고고도 공중부양풍력 발전소를 작동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발전방식임에는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독특한 풍력발전기 이야기로 마무리 하자. 보어텍스 블레이드리스라는 풍력발전기는 블레이드가 없다. 블레이드 없이 마치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듯 흔들림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한다. 아직까지 효율이 높지는 않지만 바람계곡 사람들처럼 바람을 이용하려는 노력은 높이 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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