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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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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와 도예가, 함께 흙을 만지다 (한인섭 에너지융합소재단 책임연구원, 김준성 도예가)

흙이랑 불이랑’을 이끌고 있는 한인섭 에너지융합소재단 책임연구원과 토울공방을 운영하는 김준성 도예가는 이제 굳이 과학자, 도예가 하며 딱딱 선 긋지 않는다.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생태적 도자기

충남 공주시 상신리 도자예술촌에 위치한 토울공방 안. 여럿이 모여 고개를 수그린 채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지식동아리 ‘흙이랑 불이랑’ 회원들이다. 한 달에 한 번, 연구원을 벗어나 함께 도자체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미적인 감수성을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구성원 간 소통이 잘 이루어져 모두들 열심이다. 또, 체험 및 강연을 통해 연구원의 에너지소재 기술과 전통 도자기 소재 기술이 공유되기에, 이 시간은 창의적인 연구 수행으로도 이어진다. ‘흙이랑 불이랑’을 이끌고 있는 한인섭 에너지융합소재단 책임연구원과 토울공방을 운영하는 김준성 도예가는 이제 굳이 과학자, 도예가 하며 딱딱 선 긋지 않는다.

“흙보다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부드러운 물성, 물과 잘 어우러지는 친화성. 생명을 키우고 스스로 생명이 되는 태초의 대자연이 내려준 고귀한 선물이다. 이 땅에 흙이 아닌 날선 쇠붙이로 상처를 내고 뭉치채 산허리를 베어 버리는 흉포함이 대지에 아픔을 주지만 흙은 스스로를 치유한다. 흙으로 부터 생명수를 공급 받는 이들의 고통도 아물게 한다. 흙에서 태어나 흙의 품으로 돌아가는 우리라는 존재들, 흙의 따뜻한 가슴을 마음으로 품고 닮아가는 것. 사람으로 사는 것. 난 흙이 되련다. 흙가슴이 되련다.” (김준성 도예가 ‘흙가슴으로’ 中)

질문 - 도자기는 흙으로부터 시작되는 만큼 자연친화적인 것 같습니다. 김준성 답변 - 요즘 도자기를 체험하러 많이 오는데요. 저는 만들기에 앞서 도자기라는 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이해시켜주고 싶어요. ‘땅에서 돌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그 돌들이 오랜 시간동안 풍화작용 등을 거쳐서 가루가 되고, 흙이 되고, 점토가 된다. 그 점토를 사람이 기술로서 그릇을 만들어내고 열을 가해서 다시 돌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럼 이 돌은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가루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게 되기에 자연의 그릇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주고 있습니다. 또, 자연에 해를 끼치는 것은 만들지 말자, 밖에 내놓았을 때 짐 되는 것은 만들지 말자고 다짐하죠. 그러다보니 뭘 하나를 만들더라도 몸이 먼저 움직이기보다 생각을 더 오래 하게 됩니다.

한인섭 답변 - 플라스틱 같은 제품들은 재활용은 할 수 있어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죠. 도자기는 시간이 지나 온갖 자연의 풍파를 겪고 나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또, 오랜 시간을 거쳐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깨진 도자기 파편들을 자연친화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보통 비가 올 때 시멘트 보도블럭에서는 내린 비가 흡수 되지 않고 옆으로 흘러서 하수구로 갑니다. 하지만 도자기 파편을 일정 크기로 분쇄한 뒤 점토를 섞어 보도블록을 만들면, 빗물이 블록 안으로 바로 침투를 해서 쾌적한 도보를 할 수 있어요. 투수성 보도블록, 에코 보도블록이라고도 해요. 실제로 일본의 모든 대도시들은 폐도자기를 활용한 투수성 보도블록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질문 - 도자기 작업의 매력이 무엇입니까?
김준성 답변 - 사람의 힘에 의해서 컨트롤되지 않는다는 것이 큰 매력이죠. 특히 두 가지와 싸움을 해야 하는데 하나는 수분, 하나는 불이에요. 건조관리가 잘못되면 틀림없이 갈라지고, 불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파손되거나 전혀 원하지 않았던 색감의 도자기가 나옵니다. 이런 예측가능하지 않은 부분에 정성을 들여야 의도했던 작품이 나오게 되죠. 하지만 가끔은 전혀 의도치 않은 작품이 나와서 재미를 주기도 합니다. 한번은 직화를 할 수 있는 내열토로 주전자를 만들었는데, 불 속에서 주전자의 손잡이, 물대가 완전히 내려앉았어요. 수성온도를 미리 가늠했어야 했는데, 일반적인 자기 굽는 온도로 구웠던 거죠. 그런데 일그러져 주저앉은 형태가 조형적으로 멋있어서 그대로 액자 안에 들어가 작품이 되었습니다.
한인섭 답변 - 주전자가 완전히 주저앉은 모습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은 실패를 단순한 실패로 해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 이거 주저앉았네‘ 해서 그냥 깨버렸다면 고정관념의 틀에 박혀 더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 없죠. 이것은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항상 하는 것마다 잘되고 실패가 없다면, 원천적인 기술을 도출해내기 어렵습니다. 제가 연구원생활 25년차인데, 연구원 초년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확신이 있어요. 실패가 없는 성공은 절대 없다는거죠. 실패를 거듭한 사람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에는 더 새롭고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들어간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계의 벽을 허물고 함께하다

질문 - 요즘 에너지소재와 도자소재를 결합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인섭 답변 - 우리 연구원에서 연구하는 소재 중, 화산활동이 활발한 일본에서 나오는 천연 화산재가 있어요. ‘시라스’라고 해서 주로 친환경건축용 단열재의 원료로 쓰입니다. 그 화산재를 도자기의 유약으로 쓰거나 그릇을 만드는 태토로 써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1차 테스트로, 기본 도자기 점토에 곱게 간 화산재를 20%정도 섞어 그릇을 만든 뒤 불에 구워 꺼내보니 유약을 바르지 않았는데도 유약을 바른 효과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늘 공학적으로만 쓰던 원료도 전통도자기 소재로서 활용할 가치가 있겠다 하는 작은 결과를 얻어낸 거죠.

“어떤 영역이든지 새로운 뭔가를 창조해내는 방식은 똑같다고 생각한다. 예술가가 자신이 만들려고 하는 작품의 상을 미리 그려보듯이 과학자도 연구의 상을 그리는 것이다. 영역을 구분해놓아서 그렇지 사실은 같은 방식의 체계이다. 물론 하나의 영역을 같이 공유할 수는 없겠지만 경계의 벽은 분명 허물어지고 있다. 과학적인 생각을 도입해서 예술을 하는 자도 있고, 예술적인 생각으로 출발하는 과학자도 있다.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인섭 연구원 인터뷰 中)

김준성 답변- 기본 도자기의 경우, 건조시켜 초벌을 하고 유약을 발라 말린 뒤 재벌을 합니다. 에너지를 두 번 쓰는 거죠. 그런데 ‘시라스’를 섞어서 만들면 초벌을 하지 않고 유약도 안 바르니 에너지를 덜 쓰게됩니다. 또, 유약 자체가 돈이기 때문에 유약 추가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구요. 처음 시도였지만, 에너지 세이브 뿐 아니라 자원 세이브도 할 수 있기에 그런 측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기에 지속적으로 한 박사님과 연구해야죠.

질문 - 도자기 작업을 하던 중 과학적으로 벽에 부딪혔을 때 있으시나요?
김준성 답변 - 내가 만드는 것의 원료에 대한 기초 지식 정도는 알고 싶은데, 해결되지 않을 때 답답하죠. 예를 들어, 유약을 만드는데 필요한 여러 재료들이 있는데요. 그 재료들을 구입한 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로 유약을 만듭니다. 그런데 똑같은 정보로 만들었음에도 과거에 항상 나오던 결과물과 다른 거에요. 직접 확인해보면 분명 재료 하나가 바뀌어 있습니다. ‘장석이다‘ 그러면 예전에는 안양에서 나왔던 장석인데 부여 지역으로 바뀌어 있는거죠. 같은 장석이어도 지역에 따라 온도차라든지, 색감차가 확연하게 다릅니다. 분명히 성분이 다른데 그 차이, 기초과학을 누구도 답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한인섭 답변 - 작가들은 모두, 고려청자가 어떻게 이 비색이 나왔는지, 이조백자가 이토록 형언할 수 없는 백색을 나타낼 수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예술가들의 영역 안에서는 그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어렵죠. 지난번, 공주대와 함께 계룡산 일대에서 나온 조선시대 청화분청사기를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철 성분으로 그렸으며, 몇 도에서 구워야 저런 느낌과 톤과 색상이 나오는지를요. 만든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 알 수가 없잖아요. 연구소 장비를 활용해서 분석을 한 뒤 데이터가 나오면 그제서야 ‘왜’가 해결이 됩니다. 이런 작업은 김 선생님과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질문 - 함께 작업해서 좋은 점이 있다면요?
김준성 답변 - 도자기만 하는 것보다 다른 영역에 있는 분들과 교류하고 그로부터 나오는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되죠. 내가 생각해오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만나게 됩니다. 한 박사님과 저 모두 기존에 있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재료에서도 찾아보고 방식에서도 찾아보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한 박사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죠.

한인섭 답변 - 제가 도자기를 굽고 싶어 처음 토울공방을 방문한 뒤 쭉 3년 정도를 김 선생님과 만나왔어요. 저는 예술적인 면이 부족한 사람이고, 선생님은 공학적인 면이 부족하기에 사실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장비 면에서도 도움을 드리려고 해요. 우리 연구원에 있는 세라믹 공학 장비를 도예 쪽에 접목시키면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도자 원료를 혼합하고, 판을 밀고, 뽑아내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손으로 했지만, 연구원의 장비를 활용해 도자 작업의 중간과정을 수월하게 하는거죠. 그렇게 되면 최종 작품에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늘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