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대신 LED로 만드는 아름다움
허수빈 작가는 빛을 재료로 오랫동안 작업해왔다. 2001년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신표현주의를 배우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떠났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물감과 붓을 내려놓는다. “유학가기 전에는 빛을 예술의 영역으로 다루는 분야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독일 교수님 중에 유일하게 빛작업을 하는 분이 계셨는데, 한 눈에 보고 반했죠. 평면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에서 빛을 가지고 노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그때부터 물감 대신 빛을 재료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허수빈 작가가 반한 새로운 미술은 라이트 아트(light art)라 불리며 빛 자체를 표현의 도구로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LED는 그에게 이상적인 재료이다.
빛을 이루고 있는 빨강, 녹색, 파랑 세가지색으로 못 만들 색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 11월 한 달 동안 매일 매일 미묘하게 다른 새벽 하늘빛을 LED로 만들어 기록하기도 했다.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처음 국내에서 작업한 ‘창문가로등’ 역시 LED와 태양광을 활용한 작품이다. 가로등 끝에 LED 창문을 달고 그 뒷면에 태양전지를 부착해 만들었으며, 낮에 모아진 태양빛은 밤과 함께 푸른 창문으로 변한다. “푸른빛은 사람의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고 해요.
여러번의 시도 끝에 가장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푸른빛을 만들어, 12분 동안 그 빛이 조금씩 변하도록 프로그래밍 했습니다.” 허수빈 작가가 만들어낸 푸른빛은 아무리 오랫동안 바라보아도 눈이 부시지가 않다. 그는 빛으로 오염되어 잠들지 못하는 밤에 평온함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창문가로등은 현재 부산 초량동, 부산 안창마을, 울산 태화강공원, 기장군 네 곳에 세워져 있다. 도시의 네온사인, 나무와 바위를 둘러싸는 경관조명 마냥 강하게 주장하는 것 없이 그저 담담하게 보는 이들을 감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