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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30

지난호보기

엄마는 초능력이 있어 - 글 김보영_SF작가 (01demian@hanmail.net)

"엄마는 초능력이 있어." 라고 말했을 때 네가 그랬지.
“세상에 초능력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너는 퉁명스럽게 말했어.
“우리 ‘진짜’ 엄마는 ‘경기를 보고 있으면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진다’는 능력이 있었어. 아빠는 ‘여행 갈 때마다 비가 온다’는 능력이 있어서 가족여행 때마다 물난리가 났고.”
“그래서 아빠는 가뭄이 되면 세상에 비를 뿌리기 위해 여행을 다니곤 하셨지. 너희 엄마는 외국 축구팀의 팬이 되어 월드컵 구경을 다니셨고.”
“재미없거든.”

“초능력이라는 건 처음에는 다 쓸모없는 것처럼 보여. 하지만 잘 받아들이고 나면 다 그렇지만도 않아.”
말하자마자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어. 네 초능력은 ‘만지는 기계마다 고장이 난다’는 것이니까.
그래서 너는 게임도 인터넷도 못하고 스마트폰도 못 쓰지.
친구들이 새로 나온 게임이나 인터넷에서 요새 유행하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너는 친구들 무리에서 빠져 시무룩하게 혼자 놀곤 하지.
“그래. 미래에 인공지능 컴퓨터가 지구를 지배하려 들면 내가 가서 고장 내면 되겠네. 그럼 난 인류의 영웅이 되는 거지.”
그런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아줌마가 날 못 버리는 건 이놈의 낡아빠진 옷을 못 버리는 것과 비슷한 걸 거야.”
네가 내 낡은 옷장을 보며 한숨을 쉬며 말했지.

“도대체 10년째 똑같은 옷만 입는 사람이 어디 있어? 영화도 순 구닥다리만 보고. 비디오테이프 아직도 끌어안고 사는 사람 난 아줌마밖에 못 봤어. 화면도 잘 안 나오는 아날로그 TV는 그렇게 버리라는데도 안 버리고. 탁상시계 하도 보기 싫어서 내다 버렸더니 다시 가져와서 고쳐 쓰지를 않나.”
“엄마는 초능력이 있어.”
“아줌마는 우리 엄마가 아냐.”
네가 입을 쀼루퉁하게 내밀며 말했어.
“날 낳은 것도 아니고 친척도 아니고 아무 관계도 없잖아. 아줌마는 그냥 우리 아빠의 젊은 애인이었을 뿐이라고.
친구들이 아줌마를 보면서 네 언니냐고 물으면 얼마나 창피한 줄 알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줌마는 왜 나랑 사는데? 난 그냥 혹일 뿐이라고. 나랑 살면 아줌마는 시집도 못 가.”

언젠가 너와 함께 아빠가 다니던 공업단지에 갔을 때 그런 대화를 했었지.

“저 굴뚝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있어.”
“보는 것처럼 말하지 마.”
“정말이야. 저기, 위에서 액체 같은 걸 뿌리고 있는데 거기에 이산화탄소가 막 흡수되고 있어. 위로는 깨끗한 공기만 나오고.”
너는 굴뚝을 한참 올려다보다가 질문했어. “그러면 이산화탄소는 어디로 가는데?”
“액체에 녹은 거야. 그러면 부피가 작아지니까. 지하철에 사람이 꽉꽉 들어차는 것처럼.”
“그러면 원래 이산화탄소가 있었던 자리는 어떻게 돼? 그만큼 구멍이 날 거 아냐.”
나는 잠깐 너를 멀뚱히 보았어.
“기체는 움직이니까…… 구멍은 안 나. 주변의 공기가 와서 메워지겠지.”
“그러면 공기가 희박해지겠네.”
나는 다시 너를 멀뚱히 바라보았지.
“공기에는 무게가 있으니까 그럴 일은 없어. 중력이 계속 당기니까…… 벽돌 밑장 뺀 것처럼 위에서 내려와서 채워지겠지.”
“그럼 대기권이 낮아지겠네.”
나는 입을 벌리고 말았어.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는 0.03…… 아무튼 되게 쬐금밖에 없어. 그게 다 없어지는 게 아니고, 대기에 자리가 나면 바다 같은 데에 녹아 있던 산소 같은 게 증발해서…….”
“그럼 그렇게 얼마 안 되는 걸 뭐 하러 굳이 줄이는데?”
나는 머리를 쓸어 올리고 전장에 나가는 장수처럼 마음을 단단히 먹고 허리에 손을 얹고 이야기를 시작했지.
“그 얼마 안 되는 이산화탄소가 백만분의 2만큼씩 매년 늘어나는데, 이대로 내버려두면 20년쯤 지나면 생물의 5분의 1이 멸종하고, 사막은 늘어나고, 태풍은 더 커지고, 북극은 녹고, 해안가는 물에 잠기는데…….”
나는 그러고 나서 말하려고 했었지. “나는 초능력이 있어. 그리고 네가 이런 질문을 한 건 아마도…….” 라고.
하지만 네가 한 마디를 하는 바람에 더 이야기를 못하고 말았지.
“딸한테 이런 이야기나 하는 엄마가 어디 있어.”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어.
그런 생각해 본 적 없니? 원래는 내가 그렇게 말도 잘 하고 따지기도 잘 하던 사람이었는데. 네가 말을 잘 못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언제부터 네가 나처럼 굴기 시작했을까. 내가 언제부터 너처럼 굴기 시작했을까.

내게는 초능력이 있어. 나는 원자의 움직임을 봐. 분자와 이온의 흐름을 봐. 그게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이야.
눈에 현미경 같은 것이 달려 있는데 그게 가끔 작동한다고 해야 할까.
그때 나는 그 굴뚝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투명한 액체에 이산화탄소가 결합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어. 이산화탄소 분자가 그물에 물고기가 걸리듯이 걸리고, 자석에 이끌리듯이 끌리고, 오랜 친구처럼 손을 뻗고, 솜씨 좋은 서커스 단원처럼 서로를 붙잡았지. 그들이 합쳐져서 하나가 되고 변화하고 다른 것이 되어 쏟아져 내렸지. 그날 네게 내가 본 것을 이야기 해 주고 싶었어.
어릴 때부터 나는 공기 중에서 분자가 결합하고 흩어지는 것을 보곤 했어. 수소와 산소가 서로 어깨를 비비며 손을 잡아 수증기가 되고, 또 그것이 분해되는 것을 바라보곤 했지. 세수를 하다가도 물 분자들이 친구처럼 서로 손을 뻗어 붙잡았다가 놓곤 하는 풍경을 보곤 했어. 어른들은 그런 나를 보며 ‘멍하니 딴 생각을 한다’고 핀잔을 주곤 했지.
사춘기 시절에는 내 능력이 참 싫었어. 거리에 서 있으면 사람들이 내뿜는 숨이 떠다니는 것을 보아야 했지. 자동차 배기관에서 뿜어 나오는 것을, 건물 시멘트가,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것을, 그것들이 내 땀구멍과 콧구멍을 비집고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아야 했으니까. 나는 결벽증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계속 씻기도 했고, 아무도 나를 더럽히지 않도록 집에 틀어박혀 나가지 않기도 했어.
내가 내 능력을 받아들이게 된 건 네 아빠를 만나고 나서야. 우스운 이야기지만 네 아빠가 비를 내리게 하는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배우게 되었지.

사춘기 시절에는 내 능력이 참 싫었어.
거리에 서 있으면 사람들이 내뿜는 숨이 떠다니는 것을 보아야 했지. 자동차 배기관에서 뿜어 나오는 것을, 건물 시멘트가,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것을, 그것들이 내 땀구멍과 콧구멍을 비집고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아야 했으니까.
나는 결벽증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계속 씻기도 했고, 아무도 나를 더럽히지 않도록 집에 틀어박혀 나가지 않기도 했어.
내가 내 능력을 받아들이게 된 건 네 아빠를 만나고 나서야. 우스운 이야기지만 네 아빠가 비를 내리게 하는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배우게 되었지.

나는 때로 방안에 앉아 원자나 분자 하나의 움직임을 따라가 보곤 해. 내가 내쉰 이산화탄소가 세상에 섞여드는 것을 지켜보지.
나는 네가 잠이 들면 네가 숨을 내쉬는 것을 지켜본단다. 네 몸에 들어간 산소가 폐로 들어가 혈관을 따라 네 몸 전체로 퍼지는 것을 봐. 네가 흘리는 땀 한 방울에서 나온 원소가 공기 중으로 증발하는 것을 봐. 공기 중으로 증발한 네 원소를 숨을 쉬며 내 안에 받아들이곤 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구분되어 있고 나뉘어 있고, 독립적이고 분리되고 동떨어진 무언가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내 눈에는 세상 사람들이 일종의 기체로 보여. 모두가 섞여 있는 것처럼 보여. 눈으로 보는 그 경계선이 아니라, 그보다 조금 더 바깥에 경계선이 있는 것처럼 보여.

사람들이 가까이 가면 그 경계선이 합쳐지며 섞이는 것을 봐. 내가 만나고 인사하고, 잠시 스쳐 만나고 악수를 나누는 사람에게서 나를 봐. 우리가 손을 잡을 때, 내 손바닥에서 증발한 분자가 손바닥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해지고 그 사람의 일부가 되는 것을 봐.
지금도 우리 몸의 원자는 계속 교체되고 있어. 지금도 이 순간에도 계속 죽고, 새로 생겨나지.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원래 우리 몸에 있던 것은 하나도 남지 않아.
네 아빠는 나로 가득했어. 우리가 혈연도 그 무엇도 이어지지 않았는데도, 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이미 네 아버지의 몸을 구성하는 분자의 대부분은 내게서 온 것이었어. 그때에 나는 나 자신이 죽는 것을 문자 그대로 지켜보며 울었어.
나는 이 모든 것을 봐. 나는 이제 네게서 나를 봐.
내 몸을 구성하는 것은 8할이 너야.
네 몸을 구성하는 것은 8할이 나야.
날이 갈수록 너는 나를 닮아가고, 날이 갈수록 나는 너를 닮아가지. 하나도 닮은 점이 없던 우리 둘을 보며, 이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어쩐지 닮았더라.’ 하고 감탄하듯 말하곤 하지. 날이 갈수록 너는 나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나는 너처럼 말하고 행동하지.
너를 낳은 엄마만큼이나 나는 너를 구성하고 있어. 나를 낳은 엄마만큼이나 너는 나를 구성하고 있어. 그러나 나는 네 엄마고 또한 네 딸이며, 너는 내 딸이며 또한 내 엄마이기도 해.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는데.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겠지. 네가 공장에서 했던 질문의 의미를 알아. 무엇을 보며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는지도 알아.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어.
네 아빠랑 지내다보니 나도 여행 가방만 싸면 비가 오더구나. 그런데 이제는 만지는 기계마다 고장이 나기 시작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