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이차전지 부흥기가 도래하고 있다. 현재 인류가 당면한 환경문제 때문에라도 앞으로 국제 이차전지 산업이 계속 성장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엔 이견을 가진 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기술적으로 미래에 지속가능할 것인지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갖고 있다. 수요 시장의 필요와 지금 기술 수준 사이엔 큰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차전지 산업 전주기 사슬에 기술적으로 취약한 요소가 많아 순환경제 구축에 대한 불확실성도 크다. 특히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중국처럼 거대한 내수시장이나 가치사슬 지배력이 없고, 각국 정부의 정책과 원재료 수급 상황과 같은 대외적 환경에도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더 크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이차전지 성장 모멘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초격차 기술력을 전 영역에 걸쳐 확보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이를 위해 산학연관이 함께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민관의 막대한 투자에 걸맞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원천기술을 응용해 수요산업이 필요로 하는 수준까지 고도화할 수 있는 대형 연구개발 허브 플랫폼 구축이 절실하다. 예전에는 실험실 수준의 바텀업(bottom-up)식 이차전지 연구결과도 의미가 있었지만 이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산업이 빠르게 부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이차전지 연구개발의 주도권이 국가와 산업에 있기 때문에 많은 연구개발이 톱다운(top-down)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요 산업에 임팩트를 주기 위해선 이제 보다 실증적인 결과를 만들어 가능성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래서 신속한 산업 적용을 위한 스케일업 사전검증은 필수다. 때로는 이러한 접근을 통해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연구개발 수요가 발생하기도 한다. 새로운 이차전지 연구개발을 수행하기 위한 인프라는 심각하게 부족한 실정이다. 이차전지 연구개발은 예전부터 시설이나 장비 구축에 돈이 많이 들어갔다. 최근엔 더 심화하는 추세다. 정부가 관련 연구소나 학교를 열심히 지원해왔고 기업도 많이 투자하면서 이차전지 연구개발 인프라가 훌륭한 수준으로 갖춰졌다. 하지만 대부분 시설·장비들이 실험실 수준의 작은 규모로 분산돼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존 이차전지 연구개발 인프라가 국가전략산업 고도화를 지원하기엔 효용성이 낮은 배경이다. 차세대 이차전지 연구개발을 위해 특화된 국가전략 대형 연구개발시설이 필요하다. 집적화된 시설을 유저들이 자유롭게 공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파운드리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 대학 연구실에서 창출된 요소기술을 스케일업 검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제조·분석시설이 부족한 팹리스 스타트업이나 중견·중소 기업들을 지원하며, 산업 최전방의 대기업들이 병렬로 연구개발을 수행하거나 위탁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 단순히 비싼 하드웨어를 깔아놓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시설을 유지하고 운영할 수 있는 고급 기술 인력 및 운영비 지원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와 카이스트 나노종합기술원, 포스텍 나노융합기술원, 경기도 한국나노기술원 등이 좋은 예다. 이차전지 부문도 이러한 국가전략 대형연구개발시설 설립이 매우 시급하다. 필자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울산차세대전지연구개발센터에서 현재 이러한 전략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와 울산광역시로부터 341억원 규모 지원을 받아 수행하는 ‘차세대 이차전지 상용화 지원센터’ 사업 총괄책임을 맡고 있다. 차세대 이차전지 실증제조와 안전성 평가, 정밀고도분석과 전문인력양성 기능을 제공하는 특화 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다. 흔히 이차전지를 미래의 반도체로 비유한다. 하지만 일명 ‘무어의 법칙’으로 대표되는 반도체 기술적 진보와 같은 이차전지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산업 부가가치 창출에도 차질이 생기고 지속가능한 산업 성장동력 확보에도 한계가 올 것이다. 우리나라 이차전지 산업이 수십조원 국부를 선택과 집중을 통해 투입, 설비 투자와 대규모 수주에 의해 유지되는 장치 산업을 넘어 새로운 혁신을 토대로 계속 발전하는 기술 산업이 되길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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