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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기획기사

[헤럴드경제] 더 뜨거워지기 전에 더 뜨겁게 논의하자

  • 작성일 2024.03.25
  • 조회수 239542

‘어느 작은 마을에 시내까지 가려면 산 하나를 넘어야 하는 할머니가 살았대. 그런데, 산 타기가 아주 힘들었나봐. 간절히 백일기도를 하면 원하는걸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할머니는 산을 등진 채 정화수를 떠놓고 밤마다 열심히 기도를 했대. “제발 저 산을 없애주세요.” 드디어 백일 후, 기도를 마치고 뒤를 돌아본 할머니! 산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건 당연하고 그때 할머니가 한말, “그럼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산을 없애려면 가서 흙이라도 파야할 텐데, 노력은 고사하고 심지어 이뤄진다는 믿음조차 없으면 기도도 소용없다는 어린 시절 주일학교 설교말씀이 종종 떠오른다. 탄소중립 선언 후 지금까지 온 길이 흡사 뒷산을 그냥 없애 달라고 기도 중인 할머니 같아서다. 한삽한삽 흙을 뜨는 구체적 노력이 필요한데, 여전히 총론을 두고도 갑론을박이니 걱정이다. 지난해 말 모 발전사의 탄소중립위원회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 탄소중립 목표달성 가능성을 몇 퍼센트로 보느냐는 임원의 질문에 단호하게 0이라 대답했다. 실로 믿음조차 없는 기도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올해 초 ‘기후유권자’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기존의 진영 논리나 지형적 특성 등과 무관하게 기후위기라는 절대 의제를 가지고 출마자를 평가하는 유권자를 말한다. 국민 3명 중 1명 꼴이라 하니 적진 않다.


통계청이 지난 21일 발표한 ‘한국의 SDG 이행보고서 2024’를 보니 그럴만하다. 유엔 중간평가에 따르면 지속가능발전목표(SDG) 세부목표 중 다수의 국내 이행 수준이 OECD 주요국 중 최하위권을 기록했다는 보고이다. 7번 목표인 깨끗한 에너지 부문도 이에 해당하는데, 최하위로 낮은 재생에너지 비중 탓이다.


낮은 재생에너지 비중은 우리 경제를 위협한다. 비영리단체 ‘더클라이밋그룹’ 및 ‘탄소공개프로젝트(CDP)’가 지난 6일 발간한 ‘2023 RE100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한 곳은 RE100 이니셔티브 가입 기업 164개 중 44개로 40%에 달한다. 대만, 싱가포르, 일본,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등도 더 나은 평가를 받고 있으므로 사실상 꼴찌다. 한국에서 9%에 불과한 해당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사용률도 마찬가지다.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일본, 인도와 비교해도 낮은 수치다.


부족한 재생에너지 공급량과 높은 가격은 국내 기업들의 사업장별 목표 달성률에 크게 차이를 준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RE100 달성률은 31%인데, 그중 97%는 해외 사업장에서 채운 것이라 한다. 19%의 재생에너지를 해외에서 충당했지만 국내 달성률은 0%인 현대자동차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형편인지도 모른다.


RE100 달성 목표 시기가 대부분 2040년 이후라 하더라도 이니셔티브 가입이 계속 늘고 있으므로 국내 재생에너지의 공격적 확대는 불가피하다. 공급망 기업 대상의 목표 수립이 필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기후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투자자들이 관련 조건을 강화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포스코홀딩스의 외국인 지분률 급감은 기후리스크에 의한 것이라 한다. 석탄 화력발전 확대 등을 계획하고 있다는 이유로 투자에서 배제된 것이다.


지난해는 모든 기후 지표를 경신한 역사상 가장 더운 해였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19일 공개한 ‘2023년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에서 지구 평균 표면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45도 가량 높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재생에너지 부문도 분석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에너지 전환이 진행돼 전년대비 재생에너지 용량은 50% 증가한 510기가와트(GW)에 달했다 한다. 지난 20년 통틀어 가장 높은 재생에너지 비율이다.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는 태양광이 지난 18년 간 가장 빠르게 성장한 발전원이며, 기후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향후 10년간 매년 25%씩 성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IPCC 시나리오가 전망하는 2030년 태양광 세계 전력생산 비중은 23%다. 태양광 발전 비중이 높은 나라는 2023년 4월 기준 칠레(17.4%), 호주(14.2%), 네덜란드(14.2%), 스페인(12.5%), 독일(10.7%), 베트남(10.1%), 이탈리아(10%), 일본(9.9%) 순이다.


급속한 보급으로 부작용을 낳았다고 비난받는 우리나라 태양광 비중은 세계평균에 지나지 않는다. 2015년에 세계 전력의 1.1%를 감당했던 태양광은 2022년 현재 4.5%를 감당한다. 태양광의 급속한 보급은 글로벌 트렌드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법이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경우 그 엄청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2015년 이후 태양광 발전량의 증가율이 각각 1%와 2%에 그쳤다고 한다. 태양광 발전의 성공이 햇빛뿐 아니라 정부정책에 달려있음을 의미한다고 엠버는 언급한다.


최근 고조된 관심 덕에 우리 정당들이 기후공약을 발표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상세 내용에는 아쉬운 점도 많겠으나 이에 대한 논의가 ‘산을 옮길’ 구체적 방법을 끌어내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지난 19일 공중파 100분 토론에서는 거대양당의 기후정책을 다뤘다. 재생에너지 확대 필요성과 저조한 성적표에 대한 우려에는 이견이 없다. 우리 정부가 표방하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합리적 조화, 무탄소에너지 활용의 극대화를 위해서 가장 시급한 것도 재생에너지의 체계적 보급 확대다. 우리 사회의 좀더 활발한 논의가 온실가스 감축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구체적 정책의 신속한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사원문링크 : https://news.heraldcorp.com/view.php?ud=202403250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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