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지열에너지, 황금기 맞이하나

2023-08-25 11:02:38 게재

화산지대 아닌 독일, 적극 추진 … 도이체벨레 "물 없는 첫 상업용 지열발전소 내년 완공"

지구의 핵은 약 약 6000℃로 태양만큼 뜨겁다. 그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구 표면 아래 2000~5000m에서도 60~200℃에 달한다. 화산지역의 경우 지표면 온도는 400℃에 달할 수 있다. 이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열에너지를 의미한다. 지열발전은 수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공해가 없어 친환경적이며, 기존의 화력이나 수력, 그리고 기타 재생에너지와 달리 24시간 연속 가동할 수 있다. 설비의 실제가동률이 매우 높다. 또 지열발전은 풍력이나 태양광발전과 달리 날씨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어떤 연료도 필요치 않고, 어떤 폐기물도 만들지 않는다. 유지보수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24일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인류는 오래 전부터 지열의 힘을 이용했다. 1세기 현재 아헨과 비스바덴으로 알려진 서부 독일도시에 살던 로마인들은 온천수로 집과 온천탕을 데웠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은 지구의 열을 이용해 음식을 조리했고, 1904년 이탈리아 중부 라데렐로에서는 지열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했다.


오늘날 30개국 약 400개 발전소에서 지표면 아래서 발생하는 증기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총 발전용량은 16기가와트(GW)에 달한다. 이 발전방식은 미국과 멕시코 엘살바도르 아이슬란드 튀르키예 케냐 인도네시아 필리핀 뉴질랜드 등 환태평양 조산대에 있는 화산지역에서 특히 중요하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지열에너지 비중은 총 전력생산의 0.5%에 불과하다.

심부(deep) 지열에너지는 어디나 가능

전세계적으로 심부 지열에너지는 주로 수영장이나 건물, 온실난방 및 도시난방 시스템에 사용된다. 최대 5000m 깊이의 시추공에서 최대 200℃의 물을 퍼올린다. 그런 다음 열을 추출하고 냉각된 물은 2번째 관을 통해 다시 땅으로 내보낸다.

이같은 열 포집 방법은 전세계적으로 실현가능한 데다 저렴하기까지 하다. 화산활동이 없는 국가에서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 '글로벌 재생에너지 현황보고서' 평가에 따르면 전세계 심부 지열발전소 설치용량은 약 38기가와트(GW)다.

현재까지 중국(14GW)과 튀르키예(3GW) 아이슬란드(2GW) 일본(2GW)이 심부 지열에너지 개발의 선두주자다. 점점 더 많은 도시지역과 온실에 난방을 공급하고 있다. 독일 뮌헨시는 저렴한 지열난방을 즐기고 있으며 이 기술을 사용해 2035년까지 난방공급 부문에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독일정부도 2045년까지 전국에 탄소중립적인 열 공급을 위해 심부 지열에너지 개발과 보급에 박차를 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70GW의 심부 지열에너지 설치로 연간 약 300테라와트시(TWh)의 열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독일 내 모든 건물의 열 공급 수요를 절반이나 책임질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열펌프를 사용해 지표면과 가까운 열원에서 지열에너지를 활용하고 있다. 50~400m 깊이의 폐쇄형 파이프 시스템을 통해 지표에서 지하로 물을 운반했다가 다시 되돌려 10~20℃로 가열한다. 그러면 열펌프가 이 에너지를 사용해 30~70℃의 물을 출력한 다음 건물난방에 사용한다.

연구자들은 독일에서 이 얕은 지열에너지를 사용하면 심부 지열에너지와 유사한 난방 잠재력을 얻을 수 있다고 추산한다. 독일에서는 이 2가지 기술만으로도 미래의 건물난방 수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

독일 연구기관 6곳의 분석에 따르면 심부 지열에너지로 열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킬로와트시(kWh)당 3유로센트(약 400원) 미만이다.

에너지공급 판도 바꿀 신기술

지금까지 지열에너지 기술은 지하 깊은 곳의 대수층이나 물이 있는 지대에서 지표로 뜨거운 물을 끌어올린 뒤 그 열을 이용해 집을 데우는 데 사용했다. 하지만 이제 대수층에서 끌어올린 물에 의존하지 않는 세계 최초 상업용 지열발전소가 독일 바이에른주 게레스리트 마을에 건설되고 있다.

캐나다 '에버 테크놀로지스'는 지하 4500m 깊이 지하에 열교환기를 건설하는 사업에 돌입했다. '에버-루프'(Eavor-Loop)로 불리는 이 기술은 대형 시추장비를 동원해 약 4500m 깊이까지 수직으로 갱을 뚫는다. 이어 수평으로 약 3200m 갱을 뚫어 수십개의 시추공을 연결해 지하 열교환기를 만든다.

지금까지 널리 사용돼 온 지열수 기반 지열에너지와 달리 물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지하 대수층을 찾는 데 들이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즉 에버-루프기술은 전세계 거의 모든 곳에 적용 가능하다.

에버 테크놀로지스는 게레스리트에 총 4개의 에버-루프를 시추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각각 약 64메가와트(MW) 화력과 8.2메가와트 전력을 생산해 연간 약 4만4000톤의 이산화탄소를 절감할 계획이다. 빠르면 2024년 여름 4개의 에버-루프 중 하나가 처음으로 전기에너지를 공급한다. 4개 전체 발전소 완공은 2027년으로 예정돼 있다. 그러면 게레스리트 전체에 지역난방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에버-루프 프로젝트는 유럽연합(EU) 차원의 사업이기도 하다. EU집행위는 유럽혁신기금(EIF)을 통해 이 프로젝트에 9160만유로 보조금을 지급한다. 24일(현지시각)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가 게레스리트 건설현장을 방문했다.

에버-루프 기술은 독일은 물론 전세계 에너지공급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독일 '프라운호퍼 에너지인프라·지열시스템 연구소'(IEG) 롤프 브라케 대표는 "각국이 이 새로운 기술을 통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지역에서 지열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기 전에는 천연가스로 이보다 훨씬 저렴한 열을 생산할 수 있었다. 따라서 심부 지열에너지 발전소 건설에 투자하는 것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 침공 이후 가스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천연가스 킬로와트시 당 가격이 12센트 이상으로 상승해 셈법이 바뀌었다. 독일의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열 공급을 위해 심부 지열에너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화석연료업계의 기술과 노하우 필요

지열에너지가 전세계 열 수요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는 없다. 물론 전세계 건물의 난방수요는 거의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심부 지열에너지와 지표 근처 지열에너지로 충족될 수 있다. 하지만 산업분야의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200℃ 이상의 온도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현재 지열에너지 기술력으로는 그같은 온도까지는 끌어올릴 수 없다. 그같은 고온의 경우 전기나 바이오가스, 바이오매스 및 녹색수소를 이용한 난방이 기후친화적인 대안이다.

그렇다면 심부 지열에너지는 얼마나 빨리 열 공급을 시작할 수 있을까. 지난 세기 석유·가스업계는 지표면 아래에 대한 지식과 시추기술, 인력양성 방법에 대한 상당한 정보를 축적하고 정교한 기술을 개발했다.

IEG 브라케 대표는 도이체벨레에 "석유·가스업계가 지열에너지에 관심을 돌린다면 지열에너지가 빠르게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하지만 석유·가스업계가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화석연료 생산을 고집한다면 지열에너지의 빠른 확산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케 대표에 따르면, 지열 열원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인허가는 빨라야 2~3년이 걸린다. 특히 독일의 관료체계에선 그보다 약 3배 더 오래 걸린다. 독일정부는 이 과정을 대폭 단축해 2030년까지 열에너지 생산량을 현재 1테라와트(1조와트)의 10배로 늘릴 계획이다.

한편 지진활동이 있는 지역에서는 심부 지열에너지가 소규모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 지하에 너무 높은 압력으로 물을 주입해 기존의 응력(외력을 가할 때 그 크기에 대응해 생기는 저항력)을 자극하면서다. 과거 그로 인한 지진으로 건물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지열에너지 기술에 대한 대중의 반대가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응력이 미미한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고 한다. 동시에 지열에너지 기술이 개선돼 지하수 압력을 낮추고 더 정교한 모니터링 방법을 통해 지표면 진동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브라케 대표는 '석유나 가스 및 석탄 추출에 비해 지열은 훨씬 덜 위험하다"며 "지열은 지구상 가장 안전한 에너지원"이라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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