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하던 기업의 사무실에는 100볼트 전기를 전원으로 쓰는 전자 계산기가 있었다. 80년대 중반의 이야기이다.
당시에도 전자계산기는 대부분 건전지를 쓰는 것이긴 했지만, 그 사무실엔 회사 비품으로 오래 전부터 사용하던 것이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전원 플러그를 꽂아 쓰는 계산기를 보면서 에너지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전자제품들이 갈수록 소형화되면서 에너지 소비량도 획기적으로 감소하게 된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능이 훨씬 복잡해진 스마트 기기들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이지만.
아무튼 이렇게 전기전자 제품용 배터리의 효율 등이 발전하긴 했어도, 여전히 우리는 에너지 위기를 말한다.
우리 생활에서 도저히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그래서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전기와 석유 등의 에너지.
그 미래의 일면에는 다음과 같은 접근도 있지 않을까?

윌리엄 깁슨의 SF소설 ‘뉴로맨서’는 오늘날의 컴퓨터 가상현실 문화를 낳은 시조로 꼽힌다.
이 작품은 원래 사이버펑크, 즉 컴퓨터 기술에 익숙하며 기존 체제나 가치관에 반항적인
젊은이들의 스타일을 잘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에너지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주목할 만한 설정이 담겨 있다.
바로 사람의 몸과 기계가 직접 결합되는 것이다.
이런 사이보그적 존재는 필연적으로 생체전력의 활용이라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기한다.

생체전력이란 말 그대로 살아있는 동식물의 몸 안에서 발생하는 전기에너지를 뜻한다.
그러나 생체전력이 낼 수 있는 에너지는 매우 불안정하고 그 양도 적기 때문에,
지금은 과일에 전극을 꽂아 전자시계를 가게 하는 정도의 아이들 장난감 같은
물건만 나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전자공학과 나노기술의 발달은 모든 전자제품들의
소요전력을 점점 감소시키고 있으므로, 소형화와 고효율화의 두 방향으로 진화하던
전자공학이 어느 순간 생체전력과 만나게 되면 가히 에너지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걷고 말하고 움직이고 숨 쉬는, 한 마디로 일상에서 발생하는 인체 내부의
모든 전기에너지를 축전할 수 있는 생체에너지팩이 개발된다면, 이것으로 생활에
이용되는 상당수의 소형 전자제품들은 별도의 전원이 없이 가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나라 전체의 발전전력량에서 상당한 비중의 잉여분이 발생해 에너지위기 담론이
수그러들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런 에너지팩은 그 원리 때문에 사람들의 환경과 생태에 대한 생각을 철학적으로
완전히 바꾸어 버릴 수도 있다.
즉, 환경과 자연을 우리 몸과 하나로 여기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탐색 역시 계속될 것이다.
예를 들면 핵분열식 원자로보다 훨씬 깨끗한 핵융합 에너지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2년 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거의 70년 전에 마치 후쿠시마 사고를 그대로 예견한 듯한 SF소설이 발표된 적이 있었다.
미국 작가 레스터 델 레이는 중편SF인 ‘대담한 신경’(‘SF명예의 전당 4권’에 수록)에서 원자로 1~4호기가 잇달아
무너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사태를 수습하려 뛰어드는 모습을 마치 후쿠시마 사고현장을 중계하듯이 묘사했다.
미래를 전망하는 SF의 상상력이란 이렇듯 과학기술의 장밋빛 미래뿐만 아니라 다가올 재앙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는데, 그 바탕에는 좀 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에 대한 갈망이 항상 깔려 있다.

사실 경제성이라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지구상의 에너지 위기가 피부에 와 닿는 일은 앞으로도 한참 뒤일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언젠가 우주로 진출하려면 이야기의 차원은 달라진다.
거대 우주공학이란 결국 막대한 에너지의 수요를 전제하는 것이므로 인류가 우주로
진출한다는 시나리오에는 필연적으로 획기적인 에너지원의 개발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체전력과 같은 마이크로한 에너지원의 개발 반대편에는 이렇게 아직 우리가 한 번도
다루어보지 못한 거대한 에너지원의 탐색과 활용이라는 과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의 만화가 호시노 유키노부의 작품집 ‘2001 스페이스 판타지아’는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놀라운 상상과 아이디어들의 향연인데, 그중에는 소형 블랙홀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미지의 외계생물체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사실 블랙홀이나 태양과 같은 항성을 거의 무한한 에너지원으로 이용한다는
아이디어는 진작부터 여러 과학자들이 내놓은 바 있다. 다만 지금은 그런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기술의 뒷받침이 부족한 시대여서 이론적 가능성에만 머물러있을 뿐이다.
하지만 미지의 가능성들로 가득 차 있는 신천지 우주로의 진출이 우리 인류의 운명이라면,
우리가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아마 획기적인 에너지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