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레볼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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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

  • 작성일 201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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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석 (과학 컬럼리스트)


휴대폰 화면에 빨간색 배터리 표시가 보이거나 게임을 할 때 체력 표시 막대의 길이가 짧아지면 불안하다. 휴대폰은 곧 작동을 멈출 것이며, 게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휴대폰의 배터리 표시나 게임의 체력 막대처럼 기계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것은 에너지다. 하지만 에너지는 단지 기계를 작동시키는데 필요한 것 이상이다. 세상 만물의 움직임과 변화의 근원에는 모두 에너지가 있다. 설령 그것이 생물이라 해도 예외는 없다. 들판에서 소리 없이 자라는 들꽃에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북한의 핵무기까지 모두 에너지와 관련되어 있다. 한 마디로 세상의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에너지다. 


포스와 에너지



영화 <스타워즈>에서 제다이 기사는 ‘포스’를 사용해 사람이나 우주선을 들어 올린다. 포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제다이 기사의 엄청난 능력은 포스 덕분이다. 그런데 영화 속 포스가 그리 낯설지는 않다. 포스와 이름만 다를 뿐 동양에서는 ‘기(氣)’, 마법에서 ‘마나(mana)’로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기’나 ‘마나’를 상정함으로써 만물의 운동을 전체주의적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자연을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보는 전체주의적 관점에서 생물 무생물 가릴 것 없이 모든 것의 움직임을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었다. 



사물의 운동을 해석하는 관점이 달라진 것은 갈릴레오나 뉴턴과 같은 환원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이다. 환원주의자들은 자연의 운동을 기계적인 관점으로 설명하려고 했고, 뉴턴 역학은 그들의 승리는 말하는 듯 보였다. 문제는 뉴턴의 운동법칙이 물체에 힘을 작용하고 난 다음에 물체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물체를 떨어트리면 지면과 충돌 후 물체가 원래 높이까지 튀어 오르지 못하는지는 뉴턴 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보존 법칙이 필요했지만 당시에는 에너지의 개념조차 등장하지 않았다. 


energy라는 말은 1807년 영국의 물리학자 토마스 영이 그리스어의 에네르게이아(energeia)로부터 따온 말이다. 원래 라이프니츠가  ‘활력(vis viva)’으로 불렀던 에 해당하는 물리량을 에너지로 부른 것이다. 이는 운동에너지에 해당하는 것으로 정확하게는 로 표현해야 했다. 하지만 영은 단지 에너지라는 이름만 붙인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에너지라는 개념의 등장 이후 줄과 마이어에 의해 일과 열이 같은 물리량이라는 것을 알려졌고, 이후 전자기학, 핵물리학의 연구를 통해서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것도 밝혀졌다. 200여 년 동안 과학자들은 에너지와 관련된 다양한 학문적 성취를 이뤄냈고, 공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화려한 현대 문명을 이룩해 냈다. 


에너지로 진화하고 에너지로 번창하다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데 필요한 것이 에너지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에너지란 무엇인지 묻는다면 우린 영이 말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정의 이상의 답을 내놓기 어렵다. 에너지는 일을 통해 정의 되는 추상적 개념으로 과학자들은 아직도 에너지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에너지를 활용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시간의 정체를 모르지만 시계를 이용해 측정하고, 시간을 활용한다. 


마찬가지로 우린 에너지를 측정하고, 잘 활용했기에 다른 동물과 달리 문명을 꽃 피울 수 있었다. 불을 이용해 음식을 익힘으로써 양질의 영양소를 뇌에 공급할 수 있게 된 인류는 다른 동물과 다른 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또한 석탄과 석유가 제공하는 화학에너지에서 역학적 에너지와 전기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산업혁명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인류가 화려한 현대 문명을 꽃피우면서 다양한 종류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에너지라고 이름 붙인 많은 것들은 역학적, 열, 빛, 화학, 전기, 원자력 에너지의 6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물론 학자들에 따라 에너지 분류 기준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6가지 분류 방법이 일반적이다. 이때 6가지 에너지는 하나의 형태로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전환시켜 얻을 수 있다. 6가지 에너지 중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이 용이한 것이 바로 전기에너지이며,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려고 애쓰는 것이며,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도 바로 전기에너지다. 하지만 전기문명이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은 아니다.


에디슨의 역전승



전기에너지는 공급 방식을 놓고 처음부터 엄청난 전쟁이 벌어졌다. 직류 송전 방식을 고집했던 에디슨과 교류 송전을 주장했던 테슬라로 대표되는 빅 매치로, 미래 사회의 모습을 결정짓는 중요한 승부였다. 먼로파크의 마법사로 불리며 생전에 이미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에디슨과 테슬라 경쟁은 언뜻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였다. 


하지만 경쟁에서 이긴 것은 테슬라였다. 변압기를 통해 전압을 쉽게 변환할 수 있는 테슬라의 교류송전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발전소에 가정으로 보내는 전력의 일부는 항상 전선에서 열로 변환되어 낭비되는데, 이때 고전압 송전을 하면 낭비되는 전력의 양을 줄일 수 있었다. 전류 전쟁에서 비신사적 행동을 한 에디슨과 달리 신사적이었던 테슬라는 ‘비운의 천재’라는 칭호와 현대 전기 문명을 탄생시킨 공로를 가져갔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교과서나 과학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세상의 패러다임은 또 변하고 있다. 


에디슨과 테슬라는 거대한 발전소에서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세상을 상상했다. 마치 공장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생산하듯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생산자 중심의 송전에서는 테슬라의 교류가 적합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를 바탕으로 하는 수요자 중심의 전력망에서는 고압직류송전(HVDC)과 직류 배전이 효율적이다. 태양광 발전과 같은 신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된 직류 전기를 직류 전원을 사용하는 가전제품에 그대로 공급하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류 송배전은 교류가 공급 될 때처럼 교류를 직류로 변환하는데 따른 에너지 손실이 줄어들어 그만큼 효율적이다. 구글과 같이 대규모 전력을 소비하는 곳에서 직류배전 방식을 사용하는 것도 전기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디슨의 완패로 끝날 것 같았던 전류 전쟁은 아직 진행형이며, 미래에는 에디슨의 역전승으로 끝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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